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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는 집문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 집 안은 마치 폭탄이 터진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
 
“봉숙이, 너 설마…”
 
봉숙이가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미안…”
 
현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집을 이렇게 만든 것이 용서된다는 건 아니야.”
 
봉숙이가 꼬리를 흔들며 진공청소기를 가져왔다. 현아는 신기했다.
 
“아니, 그걸로 어떻게 치우려고?”
 
“몰라, 너가 항상 이거 쓰던데?”
 
현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청소를 시작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홍박사가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아직도 김치 국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현아,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난…”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봉숙이가 달려와 홍박사의 다리를 물었다.
 
“아악!” 홍박사가 비명을 질렀다.
 
봉숙이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가! 냄새나…”
 
홍박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냄새?”
 
현아가 대답했다. “아마도 배신의 냄새겠죠.”
 
홍박사는 무릎을 끓고 용서를 빌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를 맞고 서 있는 홍박사가 불쌍해진 현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라면 드실래요?”
 
홍박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주저했지만, 셔츠를 벗으면서 들어왔다.
 
봉숙이가 킁킁거리더니 말했다. “향수… 다섯 종류…”
 
현아는 눈을 가늘게 뜨며 홍박사를 노려봤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셨나 봐요?”
 
홍박사는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하려 했지만, 갑자기 그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현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배고프신가 봐요. 김치 더 드실래요?”
 
홍박사는 고개를 저으며 뒷걸음질 쳤다. “아… 아니요.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가 황급히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봉숙이가 그의 바지를 물어 잡아당겼다. 홍박사의 바지가 벗겨지면서 그는 팬티 차림으로 밖에 서 있게 되었다.
 
현아가 말했다.
 
“이제 정말 깨끗해지셨네요. 몸도 마음도…”
 
홍박사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비를 맞으며 도망갔다. 그 뒤로 홍박사를 만날 수 없었다.
 

 
몇 주 후, 현아는 봉숙이와 함께 동네 카페에 앉아 있었다. 그때 우연히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대화가 그녀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래, 그 멘솔 사탕 프로젝트 말이야. 아직도 완성하지 못했다고?”
 
현아는 귀를 쫑긋 세우고 듣기 시작했다.
 
“미키광수님,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하지만 곧…”
 
“알았네, 난 결과만 듣겠네.”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 중 한 명이 자리를 떴다. 남은 사람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그는 세련된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에 눈이 부리부리 했다.
 
현아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혹시 방금 멘솔 사탕에 대해 이야기하신 건가요?”
 
남자는 현아를 힐끗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렇습니다만, 저는 성보 제약의 미키 광수입니다.”
 
현아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 그 성보 제약이요?”
 
미키는 말했다. “네, 그런데 당신은?”
 
“저는 현아라고 합니다. 사실… 제가 그 멘솔 사탕을 먹었어요.”
 
미키의 눈이 커졌다.
 
“정말인가요? 그렇다면 우리가 좀 더 대화를 나눠야 할 것 같군요.”
 
그들은 카페에서 나와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봉숙이도 따라왔다.
 
미키는 현아와 보폭을 맞추며 나란히 걸으며 말했다.
 
“현아 씨, 당신의 경험은 우리 연구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 사탕을 먹고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현아가 대답하려는 순간, 봉숙이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흡혈귀가 됐어요.”
 
미키는 깜짝 놀라 봉숙이를 바라보았다.
 
“이런, 개가 말을 하다니…”
 
현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네, 이것도 부작용 중 하나예요.”
 
미키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흥미롭군요. 우리의 연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네요.”
 
그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현아에게 건넸다.
 
“우리 회사로 와주시겠어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현아는 망설였다.
 
“하지만 전 이미 홍박사님과…”
 
미키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홍박사의 실수는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부드러운 미소와 지적인 눈빛에 현아는 마음이 흔들렸다.
 
봉숙이가 킁킁거리며 말했다.
 
“이 사람… 향수 한 가지…”
 
현아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알겠어요. 찾아뵙겠습니다.”
 
미키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내일 아침 9시에 회사로 와주세요. 이 친구도 함께요.”
 
그는 봉숙이를 가리키며 윙크했다.
 
현아와 봉숙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때 봉숙아? 이번엔 괜찮아 보이지?”
 
봉숙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답했다.
 
“글쎄… 너무 천사처럼 보여, 뭔가 있을 거야.”
 
현아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한번 믿어보자. 이번엔 정말 우리 인생이 바뀔지도 모르잖아?”
 
그들은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렸다. 과연 미키광수는 그들에게 어떤 운명을 안겨줄까?
 
다음 날 아침, 현아와 봉숙이는 성보 제약 본사 앞에 도착했다. 공사 중인 건물이 그들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와, 대단하다. 창문이 안 보여.” 현아가 감탄했다.
 
봉숙이가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냄새가 이상해…”
 
그때 미키광수가 로비에서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 그는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현아 씨, 그리고 봉숙이도"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층으로 올라갔다. 미키광수의 사무실은 온통 금색으로 꾸며져 있었고, 사방에서 빛이 났다.
 
“자, 앉으세요.” 미키가 소파를 가리켰다.
 
현아와 봉숙이가 앉자 미키가 말을 이어갔다.
 
“현아 씨, 당신의 경험은 우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네, 말씀해 보세요.”
 
미키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사실, 우리는 당신처럼 변화한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당신의 DNA를 연구해 백신을 만들고 싶습니다.”
 
현아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간단히 말해서, 당신의 피가 필요해요.” 미키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봉숙이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안돼, 위험해!”
 
미키는 봉숙이를 진정시킨다. “걱정 마세요. 아주 소량만 필요할 뿐이에요.”
 
현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피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면…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미키광수님, 제 피로 정확히 뭘 하실 건가요?”
 
미키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가 곧 부드러워졌다.
 
“글쎄요. 기술적인 설명은 복잡할 텐데…”
 
그때 갑자기 사무실 문이 열리면 홍박사가 뛰어들어왔다. 비오는날 헤어질때 본 팬티 차림 이었다.
 
“현아 씨, 안 돼요! 미키의 계획은…”
 
홍박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키가 버튼을 눌렀다. 순간 사무실 바닥이 열리며 홍박사가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으악!” 하는 비명과 함께 “풍덩" 소리가 들렸다.
 
현아와 봉숙이는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키가 태연하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그냥 지하 수영장이에요. 홍박사가 수영복 차림이기에 수영장을 잘 못 찾은 거 같아서 패스트트랙으로 보내준 거예요.”
 
현아는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미키는 한숨을 쉬며 벽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책장이 열리며 비밀 통로가 나타났다.
 
“우와, 영화에서나 보던 건데" 현아가 감탄했다.
 
그들은 비밀 통로를 따라 지하 연구실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수많은 과학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미키가 설명했다. “여기서 우리는 인류의 진화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현아 씨, 당신은 우리 연구의 중요한 열쇠예요.”
 
현아는 불안해하며 물었다. “저를 실험대상으로 삼으려는 건가요?”
 
미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파트너로 삼고 싶습니다. 당신의 DNA는 매우 특별해요. 우리는 이를 통해 인류를 질병과 노화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 거예요.”
 
봉숙이가 으르렁거렸다. “나는 지금이 좋아.”
 
“봉숙 씨, 당신도 특별해요. 우리는 당신의 능력도 연구하고 싶습니다.”
 
현아는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믿을 수 있죠?”
 
그때 한 과학자가 급하게 달려왔다.
 
“미키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일이죠?”
 
“13번 실험체가 탈출했습니다.”
 
순간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고, 연구실은 혼란에 빠졌다.
 
현아는 봉숙이를 안고 미키를 노려보았다.
 
“실험체라고요?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진정하세요.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파에 앉으라고 말한 후, 본인도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휴…. 혹시 담배 있어요?”
 
“아니요.”
 
그때 갑자기 천장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사람이었다.
 
과학자들과 요원들이 미키 사무실로 들어오더니 실험체를 잡으려고 했다.
 
실험체가 현아와 봉숙이를 향해 말했다.
 
“Help me…”
 
봉숙이가 용감하게 앞으로 나섰다.
 
“내가 막을게!”
 
현아는 혼란 속에서 실험체를 부축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리고 미키에게 외쳤다.
 
“이게 당신이 말한 인류의 진화인가요?”
 
밖으로 나온 현아와 봉숙이는 숨을 고르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봉숙이가 말했다.
 
“이제 어쩌지?”
 
현아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평범한 삶은 이제 글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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